1615(광해군 7)∼1673(현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허(子許). 현령 신구(信耉)의 아들이다.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가주서(假注書)·전적·함경도사를 거쳐 병조좌랑·정언·경상도사를 지내고, 1656년 사예에 올라 홍주목사로 내려가 크게 치적을 쌓았으며, 장령으로
있을 때 전지(田地)의 매매는 반드시 관서를 거쳐야 하며 노비의 경우도 같이 하도록 건의하여 마침내 영구히 제도화되게 했다.
그
뒤 안동부사를 거쳐 1665년(현종 6)에 헌납·예빈시정(禮賓寺正)·영광군수를 지내고, 이듬해 사성으로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집의·강계부사·의주부윤·우승지를 역임했으며, 1671년 수원부사로 나아가서는 부병(府兵)의 정원이 많고 호적에 있는 백성들이
계속 줄어들자 부병들 중 노약한 자를 가려내어 정예병들로 선발하게 해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2년 후 파직되어 돌아와 곧
죽었으나 그해에 관직이 복구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