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4(현종 5)∼1719(숙종 45).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여장(汝張)이고, 대팽(大彭)의 아들이다. 1689년(숙종 15) 원자의 위호(位號)문제로 송시열 등 서인이 조정에서 쫓겨나고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그는 이를 개탄하여 상소하려 했으나, 장인 허격이 극력 저지하여 그만두었다. 1691년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로 있던 남인 학자
이현일을 공격하다가 양사와 대신들의 탄핵을 받아 1693년 진해로 귀양갔다.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 돌아왔다.
이로부터 향리에 숨어
두문불출하다가 1705년 효성과 품행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고, 전설별제(典設別提)에 승진하고, 1708년부터 회인과 목천의
현감을 지냈는데 백성들이 비를 세워 그의 덕을 칭송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교유를 즐기지 않았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권세가문에 간 일이 없었다.
판서 민진후가 한번 만날 것을 원하였으나 끝내 거절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