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성하종)
가문을 빛낸 선조(성하종)

 

성하종(成夏宗)
1573(선조 6)∼1645(인조 23).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이술(而述)이고, 부친은 참판 수익(壽益)이다. 여러번 문과에 실패한 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했다. 대정(大靜)현감을 지냈으며, 그 뒤 형조좌랑·군기시첨정·훈련원부정·갑산부사·함경남도우후(咸鏡南道虞候)·길주목사 등을 역임했고, 강계부사로 있으면서는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떨쳤다. 1636년(인조 14) 청백리에 뽑히고 창흥군(昌興君)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이 되었다.

이해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로서 수군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이미 강화도가 함락된 뒤였다. 이 때문에 고의로 출동을 늦추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아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그 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북방의 방어에 공헌했다. 1645년 경성 임지에서 죽자 조정에서 병조판서로 추증했다. 함경북도 경성의 청덕사(淸德祠)에 제향 되었다. 그는 성품이 인후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으며, 관직생활에 충직하고 청렴하여 칭송을 받았다. 송시열이 신도비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