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0(중종 35)∼1594(선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이옹, 호는 석곡(石谷). 안음(安陰) 출신으로 교위 한량(漢良)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유생으로 있다가
1569년(선조 2) 부친이 죽자 학업을 그만두고 오직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했다. 효행으로 천거 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이 고령·거창·현풍 등 경상도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정유명 등과 함께 안음에서
기병유사(起兵有司)로 창의문(倡義文)을 발통하는 등 김면의 참모가 되어 의병활동을 했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고, 의약·복서·산경·지지 등 유학
이외의 분야도 두루 섭렵했다. 지평에 추증되고, 안의(安義)의 구연사(龜淵祠)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석곡집》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