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숙종 38)∼1779(정조 3).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경(子擎), 호는 노운헌(老雲軒). 호조좌랑 덕형(德馨)의 아들이다. 1735년(영조 11)에 사마시의 양시에 합격해 생원·진사가 되고,
1743년에는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746년 홍문관수찬에 제수되자 궁중의 의식에 기녀가 참여하는 것은 나이 어린 세자의 교육상 옳지
않다고 소를 올려 이를 중지하게 하였다. 그 뒤 헌납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을 겸직했다.
이어 세자시강원필선·보덕을 거쳐
집의·승문원교리가 되었다. 1753년에 승지·대사간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그 뒤 1765년 강원도관찰사·동의금부사·동지춘추관사 등을 역임하고,
1777년(정조 1)에는 대사헌에 이르렀다. 그는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으며, 의리와 현사(賢邪)에 대한 분별에 의연해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지조를
지녔다. 또한 청명한 선비로 사우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평생 지우로 조구명·이덕수·윤순·이하곤 등과 교류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