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영조 13)∼1808(순조 8).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백원(百源), 호는 신묵재(愼默齋). 반곡(盤谷)출생으로 부친은 세환(世煥)이며, 어머니는 여흥 진씨로 후번의 딸이다. 평생 동안
학문연마에 힘쓰며 후진양성에 전념했고, 역학을 깊이 연구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오의(奧義)를 터득하고 천기(天機)와 인사를 예견해 재액에
대비했다. 역리가 이해하기 어려움을 실감하고 알기 쉽도록 도해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경을 학업의 근본으로 삼도록 지도했다.
또한
왕도정치를 시행해 국태민안 하도록 왕에게 건의하고 과거제도의 개혁과 농공의 중요성을 상소해 그 시정책을 요구했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천인성명(天人性命)의 발현이 사단칠정(四端七情)이며, 이기(理氣)의 표리(表裏)로 동시에 나타난다고 주장해 퇴계 이황의 호발설(互發說)에
따랐다. 저서로는 《신묵재문집》 2권, 《신묵재홍범구주황극도설》 1권, 편서로는 《신묵재인역괘효》 상·하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