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성운成雲)
가문을 빛낸 선조(성운成雲)

 

성운(成雲)
?∼1528(중종 23).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치원(致遠)이고, 부친은 담명(聃命)이다. 1504년(연산군 10) 생원으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하고, 1506년 주서(注書)가 되었으나 왕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중종반정 뒤 1511년(중종 6) 장령으로 특별히 기용된 뒤 응교를 거쳐, 1514년 성균관유생을 계도할 사유(師儒) 28인 중의 하나로 선발되었다. 1518년 의정부에 의하여 재기가 있다고 추천되어 충청도관찰사의 물망에 올랐으나 집의 박수문의 반대로 임명되지 못했다.

이듬해 기묘사화 때는 병조참지로 있으면서 입직승지를 제쳐놓고 왕의 밀명을 전달하는 등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 제거에 앞장선 공으로 우승지를 거쳐 대사헌이 되고, 경기도 관찰사로 나아가 백성들에게 염장(鹽醬)을 제공하는 등 진휼에 힘썼다. 1522년 예조참판이 된 뒤 병조참판과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고, 1527년 병조판서로 군권을 장악하였으나, 심광언에 의해 붕당을 이룬다는 탄핵을 받고 경상도 관찰사로 좌천되었다. 시호는 경숙(景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