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성염조)
가문을 빛낸 선조(성염조)


성염조(成念祖)
1398(태조 7)∼1450(세종 32).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경(子敬). 엄의 아들이며, 석린(石璘)의 손자이다. 1414년(태종 14) 진사에 급제하고, 1419년(세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감찰·정언·지평(持平), 이조·예조의 정랑, 장령·집의를 지내고, 승정원의 동부승지와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외관으로 경상도 관찰사, 병조·형조의 참판, 한성부판사, 개성부유수에 올랐으나 말년에 병으로 사임하고 중추원지사에 임명되었다. 나이 53세로 일생을 마쳤다.

사람됨이 관대해 사소한 예절에 구애받지 않고 겉과 속이 한결 같았다. 세종은 그를 충성스럽고 순박하며 정직하다하여 칭찬했다. 그러나 그의 성질은 절제심이 없어 경상도감사 때 이르는 곳마다 잔치를 벌이고 술에 취해 그 직임을 다하지 못했다. 또한 본래 병이 많아 도내를 순시하지 못했고, 세금을 거두는데 가혹해 명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재산을 모으는데 힘을 써 많은 비방을 받았다. 아들 임(任)·간(侃)·현(俔)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 글로 이름이 있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