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성여완 선생 묘
1309(충선왕 1)∼1397(태조 6).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초명은 한생(漢生:일명 匡自), 호는 이헌(怡軒). 창녕
성씨의 시조인 인보(仁輔)의 현손, 전객서부령 공필(公弼)의 손자이고, 판도총랑(版圖摠郎) 군미(君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삼사좌윤 오천의
딸이다. 1336년(충숙왕 복위 5)에 문과에 급제해 첨서밀직(簽書密直)·정당문학을 역임했다.
1371년(공민왕 20) 민부상서로
있을 때 신돈이 처형당하자 그 당류로 지목되어 곤장을 맞고 유배당했다가 1378년(우왕 4) 정당문학상의(政堂文學商議)에 다시 발탁되었다.
1389년(공양왕 즉위년)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정변에 아들 석린(石璘)이 참여해 9공신이 되었으나, 1392년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가 등극하자 벼슬을 버리고 포천 계류촌(溪流村)에 은거했다. 태조가 고려 구신의 회유책으로 검교문하시중·창녕부원군에 봉하였으나 고사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