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정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성집(聖執).
서울 출신으로 부사 긍주(肯柱)의 아들이다. 1825년(순조 25)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1829년까지는 한림원직각 등 순탄하게
승진했다. 같은 해 전라우도 암행어사로 그 지역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한 바 있고, 1832년 무안현감을 거쳐 183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에 대마도 도주를 상대로 외교문서를 취급한 바 있다.
1839년
대사성, 1840년 이조참의, 1841년 도방대거승지, 1843년 함경도 관찰사, 1846년 이조참판·대사헌을 거쳐 1847년 형조판서로 있을
때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8년 좌참찬, 1849년(철종 즉위년) 판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이듬해 3월에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정사(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경력이 다양하고 승진이 순탄했으며, 외교활동이 많았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