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성몽정)
가문을 빛낸 선조(성몽정)

 

성몽정(成夢井)
1471(성종 2)∼1517(중종 12).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응경(應卿), 호는 장암(場巖). 교리 담년(聃年)의 아들이며, 영의정 상진(尙震)의 매부이다. 1496년(연산군 2)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나 연산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보고 벼슬을 단념하고 물러나 있다가 1506년의 중종반정에 가담해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고 전한(典翰)에 발탁되었다.

곧 홍문관 직제학으로 옮겨 있으면서 최숙생과 함께 임금의 덕과 다스리는 길에 관한 9잠을 지어 병풍으로 만들어 왕에게 올렸고, 이어 대사간·동부승지 등을 거쳐 차례로 승지직을 역임하면서 도승지가 되었다. 1509년(중종 4) 이조참판이 되어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대선취재급첩조(大禪取才給牒條)가 사실상 도첩제의 폐지로 불필요한 데도 이를 남겨두었다가 혹시 숭불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여 이 조목의 삭제를 주장했다.

그 뒤 대사헌으로 하산군(夏山君)에 봉해졌고 이어 병조참판·한성부좌윤을 거쳐 1515년 예조참판이 되었을 때 중종비 장경왕후의 상을 만나 염습을 조속히 거행하라는 왕명에 반대하여 상례법에 따르게 했다. 이어 한성부판윤으로 전임되었다가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천성이 단아하고 순수하며, 학문에 힘쓰고 남과 다투기를 피하고 사람을 아꼈었던 관계로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와 가까웠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양경(襄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