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0(명종 5)∼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자는 중임(重任), 호는 석전(石田)·삼일당(三一堂)·잠암(潛巖)이고 양주에서 살았다. 부친은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영국(永國)이며, 어머니는
전주 최씨로 제용감부봉사 언청의 딸이다. 송강 정철의 문인이다. 1570년(선조 3)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뒤에
사옹원(司饔院)과 제릉(濟陵)의 참봉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스승 정철의 잦은 유배를 본 그는 벼슬을 싫어했고, 또
동문인 권필의 죽음을 보고서 더욱 세상과는 인연을 끊었으며, 지은 시 원고마저 모두 태워버렸다. 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임진왜란 때에는
어머니가 눈병으로 앞을 못 보고 다리가 아파 걸음을 걷지 못하자,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강도(江都)까지 가서 배를 얻어 호남에 피신해 난을
면했다.
친구의 아들이 포로가 되었으나 속환(贖還)할 돈이 없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노자를 털어 구하여준 일도 있다. 좌우에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를 써 붙이고 일동일정을 그에 맞게 했으나, 만년에 세상을 비관하여 술과 시로써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석전유고> 2권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