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성담수 9世 회곡공)
가문을 빛낸 선조(성담수 9世 회곡공)

 

성담수(9世 회곡공)

이조 六代 단종복위사건(병자사화)에 찬동하여 충절을 지킨 생육신(生六臣)의 한사람이시다. 자는 이수이고 호는 문두(文斗)이시며 시호는 정숙(靖肅)이시다. 병자사화가 나자 公은 부친(성희:10여차례 국문시 함구무언하심)의 묘(파주 파평산)하에 칩거하며 허름한 초목에 흙바닥에서 기거하면서도 벼슬을 제수 하여도 끝내 숙배하지 않고 세상과 단절한채 몽구정(임진강변3대정자)에서 시와 낚시로 한을 삭히셨다 (졸년미상)

숙종때에 함안 유생들이 생육신서원을 창건하고 사액 되었는데 이 상소문에 전후6人의 행적은 각기 다르지만 마음과 행동은 일치하니 세상 사람들이 생육신이라 칭하는데 이는 사육신과 대칭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하였다. 이외 창녕의 물계서원과 해남의 금성사에 배향되셨다. 정조6년 4월19일(1782)에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정조8년에 정숙이라 시호를 내렸다.

생년은 탁영(김일손)선생의 연대를 감안추정하여 1437년생으로 (1450 세종32년. 진사시에 합격)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