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4(현종 15)∼1737(영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천상(天祥), 호는 낙애(洛厓), 권하당(權荷塘)의 문인이다. 부친은 증예조참판 세황(世璜)이며, 모친은 밀양 박씨로 증이조참판
경휘(景輝)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에 과거에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제수 받았다. 그 뒤 저작(著作)·박사(博士)를 거쳐
호남어사·자인현감을 역임했다.
자인현감에 재임 시에는 제방을 쌓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등 관개시설을 완비하고, 학교를 보수하여
지방교육을 진작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1725년(영조 1)에 관서어사, 1729년에 만경현령으로 있을 때에도 인정으로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는 당시의 고질적인 당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당쟁타파의 방안으로 탕평책을 실시할 것을 주장했으며, 청백리로도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 <낙애일고>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