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성기운)
가문을 빛낸 선조(성기운)

 

성기운(成岐運)
1847(헌종 13)∼?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충남 공주 출신의 친일정치인. 노론파의 자손으로 의익(義益)의 아들이다.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했다.

1884년 3월 주청상무서기관(駐淸商務書記官)이 되어 청나라 천진에 주재하면서 약 1년간 청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시찰한 뒤 귀국했다. 1885년 4월 홍문관수찬, 1889년 형조참의·좌부승지·한성부소윤 등을 역임했고, 1890년 9월 인천부사 겸 감리(仁川府使兼監理)가 되어 각국과의 교섭 및 통상업무 등을 담당했다.

1900년 11월 주차일본전권공사(駐箚日本全權公使)로 약 6개월간 주재하면서 일본을 연구했다. 1902년 12월 철도원 총재로 경부선철도공사에 관여했고, 1904년 이후 경상남도·충청북도·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906년 11월 박제순 친일내각의 농상공부대신, 1907년 6월 중추원부의장, 1908년 장례원경(掌禮院卿)을 역임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당한 뒤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