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3(세조 9)∼1506(연산군 12).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사아(士雅)이고, 부친은 영의정 준(俊)이며, 어머니는 참의 이계기(李啓基)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해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1498년(연산군 4) 빙고별제(氷庫別提)에 제수되었고 이어 사헌부감찰·호조좌랑·우사어(右司禦)·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했다.
150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공조정랑에 이르렀으나, 이에 앞서 부친이 중전 윤씨의 폐위에 찬성하는 상소로
연산군의 뜻에 거슬려 갑자사화 때 직산에 유배되었다가 교살되자, 형 중온(仲溫)과 함께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가 섬으로 이배되었다. 연산군이
부친을 용서해주지 않고 그에게 대죄를 씌우려 하자 “아들 된 자가 어찌 남의 손에 의하여 사약을 받으리오.” 하고 자살했다. 홍문관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