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물계서원 봉향 21선생)
가문을 빛낸 선조(물계서원 봉향 21선생)

 

물계서원 봉향 21선생
봉향 21선생 행장요약
1. 시중선생
창녕성씨 시조 고려 중윤 휘 인보의 아드님이신 휘 송국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버 이를 섬김에 사랑과 공경을 다하였다.시조공이 송경에 조회차 입경하셨다가 병으로 돌아 가시자 반장함에 지개를 만들어 몸소 시신을 지고 하루에 몇 번씩 쉬며 걸어서 창녕의 청산원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눈이 많이 내려서 임시로 청산원 곁채에서 잤다. 아침에 보니 호랑이 발자국이 시신을 둘러 쌌는데 시신에는 아무런 해도 없었고 호랑이가 온 자 취는 없고 간 자취만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져서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갔다. 큰 길을 넘 어서 서쪽으로 두 활마당쯤 가다가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백산이란 구능에 이르렀다. 그 산정에 도달하자 발자국은 사라지고 눈이 녹았는데 자리 하나 정도 넓이에 지세는 북 쪽으로 않아서 남쪽을 향하였다. 그래서 거기다 표식을 해놓고 돌아와 이곳에 안장하였 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선생은 귀하게 되고 이름이 나서 벼슬이 광정대부 문하시 중에 이르고 자손은 대대로 벼슬하게 되니 사람들은 효성에 감응되어 그렇게 된것이라 하였다, 묘는 창녕 우항산 인좌의 언덕에 있다. 후손 참의 환은 효행록을 편집하고 효행 에 관한 십도시찬을 지었다. 감사 진선은 묘갈을 짓고 참판 덕조는 비음기를 추술하였 다. 물계서원에서 주벽으로 제향한다.
2. 이헌선생
선생의 휘는 여완이고 호는 이헌인데 총랑공 휘 군미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증 손이시다. 고려말 기유년(1309년)에 출생 하셨으며 병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서밀직 과 정당문학을 지내셨다. 이태조가 등극함에 왕방산에 은거하여 두문불출하고 절의를 지 키시다가 정축년(1397)에 향년 89세로 별세 하셨다. 시호는 문정이고 순조 무진년 (1808)에 본원에 추향 되었다.
3. 동고선생
선생의 휘는 준득이고 호는 동고인데 시랑공 휘 군부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증손이시 다. 벼슬은 총부상서 예문간제학에 이르렀고 성절사로 명나라에 가서 명태조와의 문답에 경륜을 밝히니 매우 기뻐하고 관복과 악기 및 홍무대통력과 육경, 사서, 통감한서를 하 사 받았다. 철종 정사년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4. 정절선생
선생의 휘는 사제이고 의정부 의정 휘 유득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현손이시다. 고려 공민왕때에 제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보문각 직제학에 이르렀고 이태조가 등극함에 차라 리 왕씨의 귀신이 될지언정 이가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동지와 더불어 만수산 두문동 에 들어가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신 두문동 칠십이현의 한분이시다.당우 임신년에 정절 이라 시호하였으며 정조 정사년(1797)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5. 독곡선생
선생의 휘는 석린이고 자는 자수이며 호는 독곡인데 이헌 휘 여완의 네 아들중 맏 아드 님이고 시중선생의 고손이시다. 1338무인 12월 3일생이며 송경 독곡방에서 태어나 호를 독곡이라했다. 1355을미 18세시 사마시에 합격 1359정유 20세에 문과 급제하여 국자감 에 제수 1387정묘 50세에 정이품에 오르고 1401신사 64세에 정일품 영의정에 올라 영 상, 좌상, 우상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1423 세종5년 계묘졍월 12일 86세에 별세하시니 시 문경이고 포천 왕방산에 예장 하였다. 정축 1997년 본원에 추향되었다.
6. 충숙선생
선생의 휘는 승인데 양혜공 휘 달생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6대손이시다. 무과에 급 제하여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단종을해년에 도총관이 되었고 병자년에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부자가 함께 화를 당하였다. 숙종 신미년에 숭록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정조 신축년에 충숙이라 시호하였다. 정축년(1797년)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7. 인재선생
선생의 휘는 희이고 자는 용회이며 호는 인재인데 수헌 참판 휘 개(槪)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6대손이시다. 세종경오년에 명경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승정원 교리였는데 성망이 조정에 가득하였다 한다. 병자년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김해에 유배되었다 가 무인년에 연좌가 풀려서 공주 달전에서 두문은거 하였다. 갑신년에 별세하셨고 예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순조 무진년(1808년)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8. 매죽당선생
선생의 휘는 삼문이고 자는 근보이며 호는 매죽당인데 도총관 휘 승의 아드님이고 시중 선생의 7대손이시다. 세종무오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정묘년에 수찬관으로 있으면서 중시에 장원급제 하였다.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시고 단종복위 사건 의 실패로 화를 입은 사육신의 한분이시다. 숙종때 관직이 회복되었고 벼슬은 우승지이 고 시호는 충문이며 영조5년에 본원에 봉향되었다.
9. 문두선생
선생의 휘는 담수이고 자는 미수이며 호는 문두인데 교리 희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7대손이시다. 병자사화에 부친과 연루되어 김해로 유배 되었고 그 후 연좌가 풀리게되 자 파주 두포리 몽구정에 살면서 두문불출 하시다가 별세하였다 함안의 서산서원에 봉 향돼 정숙이라 시호하였다. 영조5년(1729년)에 봉향하였다. 생육신의 한분이시다.
10. 청송선생
선생의 휘는 수침이고 자는 중옥이며 호는 청송인데 대사헌 사숙 휘 세순의 아드님이 고 시중선생의 9대손이시다. 우계선생의 아버님이고 조정암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 고 루차 제관하였으나 불취하였다. 숙종때 우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정이다. 기 유 영조5년에 봉향하였다.
11. 절효선생
선생의 휘는 수종이고 자는 숙옥인데 사숙 휘 세순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9대손이 시다. 조정암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정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가정계사년에 별세하시니 향년 39세였다. 영조3 정미년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12. 대곡선생
선생의 휘는 운이고 자는 건숙이며 호는 대곡인데 송암 휘 세준의 아드님이고 시중선 생의 9대손이시다. 소과에 합격하여 두 번이나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불취하고 오직 두 문구도하여 대학자가 되었다. 영조5년엥 봉향하였다.
13. 동주선생
선생의 휘는 제원이고 자는 자경이며 호는 동주인데 부사 휘 몽선의 아드님이고 시중 선생의 9대손이시다. 환훤당 김굉필선생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셨다. 효행이 지극하 여 군수가 추천 보은현감에 임명되여 6년간 종사하였다. 1506년에 출생하여 1559년에 별세하셨다. 기유 영조5년에 봉향하였다.
14, 판곡선생
선생의 휘는 윤해이고 자는 화중이며 호는 판곡인데 참봉 휘 근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 의 10대손이시다. 상주 원통산 아래에 은거하여 두문구도하였다. 이름이 조정에 알려져 참봉,왕자사전과 태인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불취하였다. 1526년에 별세하시니 향년 67 세였다. 기유 영조5년에 본운에 봉향하였다.
15. 우계선생
선생의 휘는 혼이고 자는 호원이며 호는 우계인데 문정공 청송 휘 수침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10대손이시다. 가정의 학통을 계승하여 도의 깨달음잉 매우 빨랐으나 과거 공부를 페하고 오로지 위기의 학문에 마음을 두어 성리학의 대가가 되었다. 후학을 가 르치느라 서실의를 지어 학문하는 방법과 도학을 연구하여 사칠리기설을 세웠다. 무술 년(1598)에 별세하시니 향년 64세였다. 일부 사람들의 중상으로 화를 입어 벼슬이 추 탈됨에 이르렀으나 인조때에 곧 복관되어 좌의정에 증직되었고 문간의 시호가 내렸다. 숙종 임술년에 문묘에 배향되었고 파산서원에 청송선생과 같이 배향 되었으며 기유 영 조5년(1729)에 본원에 봉향하였다.
16. 판서선생
선생의 휘는 수경이고 자는 승약인데 처사 휘 흔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10대손이시 다. 임진년(1592)에 음직으로 진주판관이 되어 왜침을 받자 조총을 주조하고 화전을 만 들어 병기를 마련하였고 군량조달을 완비하여 분전하고 적을 격퇴시켜 많은 노획물을 얻고 대승하였으나 계속되는 적의 침공에 순절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순조8년 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17. 가정선생
선생의 휘는 언충이고 자는 근숙이며 호는 가정인데 돈녕부 부정 휘 세온의 아드님이 고 시중선생의 십일대손이시다. 1533년 1월 6일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시니 1567년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 진사가 되었다 하서선생과 교유하셨으며 학문과 덕이 높아 군자 라 일컬었으며 성리학의 진리가 밝아 가례와 가규로 삼았으며 효성이 극진하였다. 명종 정묘에 나라가 어지러움을 보고 선비정신의 학문을 닦으며 은거하던중 동부참봉과 의금 부 도사로 제수되었으나 노령임을 들어 불취하고 낙향, 옥천, 양남, 동촌(현재영동)에 정착하여 성씨의 근원을 이루었는데 풍곡당에 충청, 전라, 경상 3도의 유생들의 강학으 로 여생을 보내다 임자년 향년 80세로 별세하였다.그후 영동 호계서원과 협천 구산서원 에 배향되었으며 1997년정축 본원에 추향되었다.
18. 청죽선생
선생의 휘는 람이고 자는 사열이며 호는 청죽인데 감사 증 좌찬성 휘 세평의 아드님이 고 시중선생의 11대손이시다. 학문이 정대하고 정밀심오하여 주자학을 탐독하여 경륜과 계획이 명백하였다. 벼슬이 공조좌랑에 이르고 무주 현감에 제수되었다. 만력 경신년에 별세하니 향년 65세였다. 순조8년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19. 창랑선생
선생의 휘는 문준이고 자는 중침이며 호는 창랑인데 문간공 우계 휘 혼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11대손이시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해관하고 돌 아왔다. 계해년에 인조가 반정하자 학행으로 추천되어 영동현감에 임명되여 문행과 충신은 세상의 모범이 되었다. 병인년(1626)에 별세하시니 향년 68세였다. 효종때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무진 순조8년(1808)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20. 부사선생
선생의 휘는 부사인데 증 한성우윤 휘 두년의 아드님이고 시중선생의 13대손이시다.
기유년에 생원지사 양과에 합격하고 계축년에 동당시에 장원하였으나 세도가 혼란함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고 진주 금산리에서 은거하며 계시약을 맺어 여씨향약과 퇴계선생의 동약을 모방하였고 많은 후생을 양성하였다. 숭정 임신년(1632)에 별세하시니 향년 87 세였다. 순조8년에 본원에 추향되었다.
21. 부용당선생
선생의 휘는 안의이고 자는 정포이며 호는 부용당인ㄷ데 참봉 휘 적의 아드님이고 시 중선생의 13대손이시다. 한강정술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성리학을 탐구하였다. 선 조 신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을 만나자 창의하여 창녕현 의병장과 초토사 김성일의 소모관을 정유재란시에 곽재우 장군과 함께 창녕 화왕산성을 지켰으며 무술년 에는 영남조도사가 되었다. 그 후 녕해 목사 남원부사 제주목사를 거쳐 우승지에 임명 되었으나 불취하였다. 인조 기사년(1629)에 별세하시니 향년 69세였다. 선무공신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순조14갑술(1814)에 본원에 추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