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을 빛낸 선조(7세 성개)
가문을 빛낸 선조(7세 성개)
 
7世 성 개 (成慨)
호는 수헌(數軒)이시며 회곡공의 차남이신데 태종16년(1416)에 문과 과거시 乙科 제2人으로 급제하여 시독관, 대독관을 하였으며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하셨다. 
公께서는 학문도 깊었지만 명필이셨는데 세종대왕때 왕명으로 대비(大妃)의 발원을 위하여 백형 양혜공과 함께 내불당(內佛堂)에 법화경을 金字로 써서 바쳤고 태상왕을 위하여도 법화경을 써서 바쳤다. 또한 헌릉(태종의 陵)의 비명(碑銘)을, 정 (태조의 父 항조)의 비명을, 그 외 문경공(휘,석린, 독곡)묘비와 음기를, 고양시의 성령대군의 묘비를 쓰셨다. 예조에 계실 때 위공(委공)의 십사소(十四疎)를 써서 임금이 보시도록 하셨다. 公의 사위는 연안김씨 김해의 묘를 成門선산인 파주 파평산 명당에 썼는데 그후 김전, 김안노등 5인의 정승을 배출하고 부마와 왕비(인목대비)가 배출 되었다. 
公의 유적잋 유문이 많이 있으련만 단종복위 사건으로 가산이 적몰되고 가족이 이산되어 전하지 못했으리라 사료된다, 公의 이름이 대동필원과 동국여지승람및 명현록에 실려있고 해남의 금성사(琴城祀)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