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인물가문의 근현대인물(성재한)
가문의 근현대인물(성재한)
성재한(成載翰)
1860(철종 11)∼1906. 일명 재평(載平). 한말의 의병으로 충청남도 예산 출신. 1904년 2월 한일의정서가 발표되자 예산·홍성·보령 등지를 전전하며 항일투쟁을 위한 동지규합과 여론조성에 힘썼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4월 민종식이 홍산 지치에서 의거한 소식을 듣고 그 휘하에 들어가 박제현과 함께 운량관(運糧官)에 임명되어 홍주 입성전에 참전했다. 

그 뒤 홍주성을 빼앗긴 관군과 일본군은 보병·기병 등 많은 병력으로 성을 공격해왔다. 며칠간 성을 사수했으나, 4월 9일 새벽 적의 강력한 화약 사용으로 성이 함락되었다. 이때 주장(主將)인 민종식은 피신했으나, 그는 전태진·서기환·전경호·유준근과 함께 성을 사수할 것을 결의하고 일본군의 총탄 앞에 육탄으로 대항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