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창녕성씨는 노상(路上)파과 노하(路下)파의 구별이 있다. 1616년 성보선(普善)이 만력병진보(萬曆丙辰譜)를 발간했을 때에는 노하파를 뺀 노상파 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642년 문효공의 단갈음기에 노하파도 2세 시중공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고, 또한 시중공의 장례 때 어느 현인이 상주형제들에게 이곳이 좋은 묘 자리라 하여 한 종족임이 밝혀졌다. 16세 성환(煥-柳村公)께서 적극 주장하여 1709년 창녕성씨의 합보인 기축대보(己丑大譜)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