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파게시판회곡공파
회곡공파
제목 13파의 형성
작성자 게시판관리자 [2015-11-22 10: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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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우리成氏)는 시조 중윤공(中尹公)의 외아드님이신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 휘 송국(諱 松國) 께서 판서공(判書公) 공필(公弼)과 찬성공(贊成公) 한필(漢弼) 형제분을 두셨다. 이형제분 중에서 판서공파(判書公派)와 찬성공파(贊成公派)로 크게 나누어졌는데 판서공파(判書公派)에서는 육세(六 世)에서 십파(十派)가 형성되었고 찬성공파(贊成公派)에서도 육세(六世)에서 삼파(三派)가 형성되어 도합 십삼파(十三派)가 되었다.
십삼파(十三派)의 개략설명
십삼파(十三派)의 개략설명
판서공파 (判書公 諱, )
판윤(判尹)을 지내신 한충(漢忠)의 아들로 판서공파의 효시를 이루어 성씨의 대통을 이어나가게 됐고, 예조참의를 지내신 덕룡(德龍)과 무관이었던 그의 아드님 훈()과 적()은 당시 추앙받았 던 인물이었다. 후손이 많이 살고 있느곳은 경상북도 영천군 화북면 신영(일명 大川)인데 그곳에는 지금도 대천서원(大川書院)이 있고 서원안에 시중공을 주벽으로 기() 와 덕룡(덕룡)의 위패를 모신 창효사(彰孝祠)가 있고 덕룡(德龍)의 재실 망학당(望學堂)이 있다.
독곡(문경)공파 (獨谷公 諱, 石璘)
이헌공(怡軒公) 여완의(汝完)의 자()로 사형제중 장자이다. 독곡공(獨谷公)은 고려말과 조선조 초기의 명신(名臣)이다. 고려말에 보문각 대제학 정당문학(政堂文學)등을 지내시다가 1389년 이성 계를 도와 우왕, 창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세움으로써 아홉공신의 한사람이 되었다. 조선이 개국 한 후에는 한때 공양왕의 척신(戚臣)으로 몰리어 경외(京外)로 추방되는 일도 있었으나 이성계와 태종간의 부자간 불화를 화합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태종(太宗)때 영의정까지 이르 렀고 특히 시문(詩文)과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후손에서는 군수공 계증(君守公 繼曾)과 진사공 계조(進士公 繼祖)와 예천공 계종(醴泉公 繼宗)이 각각 분파를 이루었는데 효자 휘 석태(錫泰)와 그의 아들 필원(弼源) 양세(兩世)의 효행은 만인의 귀감이 되었다. 후손들의 세거지는 진안, 정주, 영산, 용암 등인데 현재는 대구, 서울 등지에서 많이 살고 있다.
회곡(문숙)공파 (檜谷公 諱, 石瑢)
이헌공(怡軒公) 여완의(汝完)의 둘째 아들로써 고려말엽에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와 제학(提學)을 지내셨고 조선조에 들어와 강원, 경기 관찰사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 하시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필법 또한 특출하였다. 후손중에는 증손이 되는 매죽헌(梅竹軒) 삼문 (三問)은 역사에 빛나는 만고충신 사육신(死六臣)중의 한분이셨으며 문두공(文斗公) 담수(聃壽) 역시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분이시었다.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주로 포천, 음성, 거창, 무주, 연기, 달전, 청도, 둔곡, 가평, 서울 등지이다.
상곡(정평)공파 (桑谷公 諱, 석연 )
이헌공(怡軒公) 여완의(汝完)의 세째아들로 고려말 우왕 3년 공의 21세때 문과에 장원급제 하셨고,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때 강원, 충청 관찰사를 거쳐 대사헌과 예문관 대제학을, 그리고 형조(刑曹), 호조(戶曹), 예조(禮曹)의 삼부판서를 역임하셨다. 후손에서는 우상(右相) 봉조(奉祖)와 영상(領 相) (), 좌상(左相) 세창(世昌)등 상신(相臣)이 셋이나 나왔으며 대제학(大提學) ()과 대제학(大提學) 세창(世昌)으로 문형이 둘이 있었고, 또 동방의 거유(巨儒)요 문묘에 배향(配享)된 혼()이 있다. 후손들의 세거지로써는 파주, 진천, 괴산, 의성, 무안, 금능, 서산, 충주, 양주, 아산, 예산, 서울 등지이다.
중낭장공파(中郎將公 諱, 석번 )
이헌공(怡軒公) 여완의(汝完)의 네째아들로 고려말에 무과(武科)에 올라 중낭장(中朗將)이 되었으 나 병으로 크게 쓰이지는 못했다. 고려가 망한후에 형님세분은 모두 한양에 올라가 벼슬을 하고 홀로 송경(松京)에 남아 있었더니 아버님이 되는 이헌공께서 그가 병이들어 부모옆에 남아있는 것을 불쌍히 여겨 유지(遺址) 및 가장문기(家藏文記) 모두를 공에게 물려주어 그곳에 살게하였으니 홍무(洪武) 26(서기 1398) 계유년 4월 이었다. 얼마뒤에 돌아가시니 묘가 현 서울 강남구 우면 동 상곡동 묘소 국내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적하여 미확인중이다.
후손은 형님들의 삼곡(三谷)과 비견하여 크게 융성치는 못하였지만 아들인 선주부사 휘()에서 상장군(上將軍) ()와 손이되는 회령부사(會寧府使) 이건(以乾)이 나와 낭장공파의 빛을 보았 다. 후손들의 세거지(世居地)는 하동과 진주 그리고 거창 등지이다.
판사공파(判事公 諱, )
동고공(東皐公) 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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